1. 한국어 띄어쓰기
‘사랑해보고싶어.’
여러분은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사람에 따라 ‘사랑해. 보고 싶어.’로 해석할 수도 있고, ‘사랑, 해 보고 싶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문장은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띄어쓰기란 무엇이며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띄어쓰기
올바른 언어생활의 기본은 띄어쓰기입니다. 하지만 문법에 따라 알맞게 쓰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함께 하다’와 ‘함께하다’ 둘 중 어떤 표기가 맞을까요? 정답은 ‘둘 다’입니다. 하지만 이 띄어쓰기에 따라 뜻이 다르게 해석됩니다. ‘회의를 함께 하다’처럼 구체적인 행위를 한꺼번에 할 때, 혹은 구체적인 행위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경우에는 부사인 ‘함께’와 동사인 ‘하다’를 각각 띄어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반면 ‘함께’와 ‘하다’를 붙여 쓰는 경우를 살펴볼까요? 이럴 때에는 ‘함께하다’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동사로 사용되기 때문에 붙여서 표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처럼 문장의 맥락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해야 헷갈리지 않고 올바르게 띄어쓰기를 할 수 있습니다.
3. 띄어쓰기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띄어쓰기가 공식적으로 규정되고 공표된 것은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고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띄어쓰기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짐으로써 어문 규정의 위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띄어쓰기가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는 기나긴 시간과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수천 년 동안 한문의 문체는 붙여쓰기를 유지해 왔고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붙여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문이 전래된 후 이 관습을 따랐고 심지어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을 표기할 때에도 붙여쓰기를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높임법 표현의 한 수단으로써, 영어 번역문의 배열 방식 문제로, 신문의 대중적 확산을 계기로 띄어쓰기가 시작되었는데, 지금의 띄어쓰기는 개화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대두법
띄어쓰기의 유래 중, 가장 먼저 대두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옛 문헌에 나타나는 한글체나 한문체의 띄어쓰기는 오늘날의 띄어쓰기와 달리 높임법 표현의 한 수단으로 나타났는데요, 이것이 바로 대두법입니다.
존대해야 할 대상 앞뒤를 띄어 쓰는 방식인 이 표기법은 국어 경어법이 말뿐만 아니라 글의 영역에서도 독특하게 나타났다는 증거인데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무너졌습니다.
대두법의 형식으로는 자 띄움 법과 줄 바꿈법이 있습니다,
자(字) 띄움 법(궐자법, 闕字法)은 문장 가운데에 임금이나 귀인의 이름이 나오면 그 앞에 한두 칸을 비워 경의를 표하는 방법입니다. 초기에는 임금을 제외하고 용비어천가 1장의 ‘육룡(六龍)’처럼 귀한 존재가 등장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줄 바꿈법은 평출법이라고 불리며, 문장에 최고로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쓰던 글줄의 아랫부분을 완전히 비우고 아예 줄을 바꿔 다음 줄 첫머리로 올려서 쓰는 방법입니다. 주로 임금을 높일 때 쓰였으나 개화기에 들어서는 임금에 대해서도 줄 바꿈법을 하지 않고 자 띄움 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줄 바꿈법의 예로 『훈민정음해례본』을 살펴보겠습니다. ‘전하(殿下)’를 높이기 위해 행을 바꿔 ‘전하(殿下)’를 행 머리에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훈민정음』의 탄생과 함께 15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우리글에서의 점찍기는 오늘날 띄어쓰기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 높임법 띄어쓰기인 대두법은 개화기 문헌에도 지속되었고,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로스(J. Ross) 목사와 한국인 조력자들이 번역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1882)와 『독립신문』, 『협성회 회보』, 『매일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4. 외국인에 의한 띄어쓰기
현대적 의미의 띄어쓰기는 외국인 선교사나 외교관의 문법서에서 영어 번역문에 맞춰 국문을 배열하면서부터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한 예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목사인 로스(J. Ross)는 한국어를 처음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소개할 목적으로 『한국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출판했습니다. 먼저 우리말을 한글로 적고, 그 위에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았습니다. 이는 영문의 가로 띄어쓰기가 국어 회화문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음을 보여 주는 실제의 예입니다.
또 다른 예시를 살펴볼까요?
영국 외교관 스코트가 쓴 『언문말책』은 띄어쓰기를 분명히 하였는데 한글, 로마자 표기, 영어를 차례대로 배열하여 학습자의 편의를 도모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더불어 선교사 언더우드(H. Underwood)의 저서에서는 로스와 스코트의 저서처럼 국문과 영문을 상하로 대역 배치 한 것뿐만 아니라 왼쪽에 있는 국문을 오른쪽에다가 영문으로 대역하는 좌우 배치 방식도 보이면서 왼쪽의 국문에 어절형 띄어쓰기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5. 한국인에 의한 띄어쓰기
한국인이 처음으로 띄어쓰기를 한 것은 박영효의 『사화기략(使和記略) 』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박영효의 띄어쓰기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독립신문』에서 본격적으로 띄어쓰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1880년대 개화기에 띄어쓰기는 시작되었으나 실험적 성격이 강해 대중의 적극적 호응이 적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들어서 띄어쓰기는 본격적인 확산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매일신보』는 1910년에 붙여쓰기로 시작했다가 1914년 6월 9일 자부터 사회면 한글 기사에서 띄어쓰기를 시도하는데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처음에는 붙여쓰기만 하다가 한글 기사부터 띄어쓰기를 시도하며 국한 혼용체 기사에까지 띄어쓰기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 후 1933년에 나온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규범화 이래 어절 단위의 띄어쓰기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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